완만한 구릉지 잠식, 바람길 차단 불가피
문봉·식사 대형 임야 쪼개기 난개발 비상
개발이익은 업자가… 인프라는 시민 혈세로
시행 한 달 만에 번복, 무기명 통과에 반발

고양시 일산동구 지영동·성석동·식사동 일대의 ‘개발행위허가 표고(해발고도) 기준 삭제 시 개발가능지 분석’ 도면. 붉은색 검토 대상지 중 빗금 친 구역은 표고 제한이 폐지될 경우 건축 및 난개발 허가가 가능해지는 면적을 나타낸다. 출처: 고양시 내부자료
고양시 일산동구 지영동·성석동·식사동 일대의 ‘개발행위허가 표고(해발고도) 기준 삭제 시 개발가능지 분석’ 도면. 붉은색 검토 대상지 중 빗금 친 구역은 표고 제한이 폐지될 경우 건축 및 난개발 허가가 가능해지는 면적을 나타낸다. 출처: 고양시 내부자료


[고양신문] 오는 26일 고양시의회 본회의 최종 표결을 앞둔 「고양시 도시계획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두고 파장이 커지고 있다. 해당 조례를 대표 발의한 고덕희 시의원(국민의힘)과 고양시 측량협회·건축사협회 측은 “과도한 중복규제를 해소해 시민 재산권을 구제하는 조치”라고 주장하는 반면, 시 도시계획 실무진과 전문가들은 “고양시 외곽 산지의 연쇄적 난개발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표고 기준이 삭제될 경우 고양시에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왜 공포된 지 한 달도 안 된 조례가 다시 전면 폐지 수순을 밟게 됐는지 4가지 핵심 쟁점으로 짚었다.


쟁점 1: 표고 규제 삭제 시 완만한 산등성이·바람길 무방비 
조례 개정 찬성 측의 핵심 논리는 이른바 ‘중복 규제론’이다. 이미 조례상 ‘경사도 15도 미만’ 기준과 산지관리법,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안전장치가 있는데 법정동별로 해발고도(50~179m)까지 묶어두는 것은 과잉 규제라는 주장이다. 고 의원은 나아가 “고양시는 지금까지 산사태가 난 적도 없고 날 곳도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시 담당부서의 진단은 다르다. ‘표고’와 ‘경사도’는 관리 목적 자체가 전혀 달라 상호 대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교철 시 도시개발과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표고 기준은 산지 난개발을 막아온 최고의 방어선이자 최후의 개발 저지선이었다”며 “이 기준이 풀려버리면 산지 개발 행위가 무분별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시 담당 부서 실무진 역시 “표고는 고지대·능선부 개발을 차단하는 ‘입지 기준’인 반면, 경사도는 붕괴를 막는 ‘지형 안정성 기준’으로 두 규제의 목적 자체가 상이하다”고 지적한다. 고양시 산지는 험준한 암산이 아닌 완만한 구릉지가 많아 산 정상부라도 경사도가 15도 미만인 곳이 적지 않은데, 표고 기준이 사라지면 완만한 산등성이를 따라 연쇄적인 개발이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물론 기존 해발고도 기준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천 앞바다 수면을 기준으로 삼는 해발고도 특성상, 일산 등 평야 지대와 달리 북한산·고봉산 자락인 덕양구 내유·관산동이나 일산동구 고봉·식사동 등은 지형적 편차가 크다. 특히 식사동 일부 구간처럼 오랜 기간 복토와 성토를 거듭해 기존 도로 높이가 해발 70m에 달하는데도 정작 개발 제한 표고는 50m로 묶여 있어, 도로보다 낮은 땅임에도 허가를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사례가 발생했다.

이에 직전 개정안을 발의했던 이해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표고 기준의 큰 틀은 유지하되, 전문 용역을 통해 각 동네의 개발 완료 지점과 지형 높낮이를 반영한 ‘평균 지반고’를 도출해 불합리한 수치를 정밀하게 재조정하자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연구용역 외부 재위탁 문제 등으로 일정이 지체됐고, 그러던 사이 아예 표고 기준 자체를 없애는 새로운 의안이 올라온 것이다.

환경적 타격도 불가피하다. 박평수 고양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는 “고양시가 그동안 수억원의 예산을 들여 구축한 비오톱(생태현황) 지도와 도시 바람길 조사, 경관생태계 연구용역 결과들이 표고 삭제 하나로 전부 무력화된다”며 “북한산에서 도심으로 흐르는 바람길이 고지대 난개발로 막히면 도심 열섬 현상과 미세먼지 정체가 극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쟁점 2: 문봉·성석 대규모 쪼개기 직격탄 
표고 제한이 사라질 경우 당장 어디가 개발 압력에 노출될까. 본지가 입수한 고양시 내부 보고서에는 표고 기준 폐지 시 난개발이 우려되는 구체적인 지역들이 나와있었다. 시 보고서가 지목한 대표적 위험지는 문봉동·성석동·식사동·지영동 일원 등이다. 상당수가 고양시 도심 외곽의 핵심 구릉지 및 산림 연접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대부분 계획관리지역(건폐율 40%, 용적률 100%)이거나 보전·생산관리지역(건폐율 20%, 용적률 80%)으로 묶여 있다. 개정 찬성 측은 건폐율과 용적률이 낮아 사업성이 떨어지므로 난개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반대 측의 주장은 달랐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이들 산지는 한 필지의 면적이 수천 평에서 수만 평에 달하는 대형 토지다. 수천 평짜리 값싼 임야를 통째로 매입해 필지를 분할(쪼개기)하면 건폐율 20%만으로도 수십 동의 대형 타운하우스나 빌라 단지, 물류창고 등을 지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표고 기준의 유무가 도시 경관을 어떻게 갈라놓는지는 고양시와 파주시 경계에 걸쳐 있는 ‘황룡산’이 여실히 보여준다. 표고 제한이 없는 파주시 방면 황룡산은 이미 산 정상 턱밑인 9부 능선까지 깎여 나가 공장들과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반면, 표고 기준이 적용된 고양시 방면 산지는 아직까지 푸른 숲을 대부분 보존하고 있다.

쟁점 3: 분양수익은 업자가, 기반시설은 시민 혈세로
더 큰 문제는 산지 난개발이 남긴 막대한 청구서가 결국 입주민의 고통과 고양시민 전체의 세금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이해림 시의원은 “연천 같은 외곽은 표고 기준이 없어도 수요가 없어 집을 안 짓지만, 서울과 맞닿은 고양시는 산지를 평당 몇만 원에 사서 대지로 바꾸는 순간 땅값이 100배 가까이 뛰기 때문에 개발업자들이 안 지을 수가 없다”고 짚었다.

이 의원의 말처럼 현행 건축법상 산지라도 폭 4m 안팎의 ‘현황도로(관습상 도로)’만 연결돼 있으면 개발행위와 건축 허가가 가능하다. 때문에 고양시의 경우 개발업자들이 기반시설이 전무한 고지대 임야를 싼값에 사들여 집만 지어 분양한 뒤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겨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후 고통은 입주민과 고양시 행정의 몫이 된다. 좁은 산길로 소방차나 응급차조차 진입하지 못하고 겨울철 폭설 시 고립되는 상황이 반복되면, 입주민들은 시청을 상대로 △진입도로 확장·포장 △상하수도 및 도시가스 관로 인입 △마을버스 노선 투입 등을 요구하는 집단 민원을 제기하게 되고, 결국 시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형적인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다.


쟁점 4: 공포 열흘 만에 뒤집힌 조례…무기명 통과

이처럼 부작용이 명백한 조례안이 어떻게 시 집행부의 ‘부동의(반대)’ 입장을 뚫고 상임위를 통과했을까. 취재 과정에서 조례 개정을 요구하는 이해관계자들의 민원 활동과 시의회 심의 과정에서의 갈등이 확인됐다.

사실 고양시의회는 불과 한 달 전인 지난 9월 22일, 이해림 의원 등이 발의한 도시계획조례 개정안을 공포·시행했다. 표고 기준의 큰 틀은 유지하되, 사방이 개발지나 도로로 둘러싸인 ‘단절 임야’와 10% 이하 잔여 임야는 도시계획위 심의를 거쳐 구제해 주는 합리적 보완책이었다. 동시에 시 도시개발과는 내년도 본예산에 2200만원의 실태조사 용역비를 세우고 고양연구원 연구과제(2027년 상반기)와 연계해 표고 기준 전반을 정밀 진단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토지주를 대리해 개발 인허가 업무를 수행하는 측량사무소와 건축사 등 일부 이해관계자들은 표고 기준의 부분적 보완을 넘어 전면 폐지를 요구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일에는 건설교통위원장실 앞 복도에 20~30명의 민원인이 모여 조례 개정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학영 건설교통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공포한 지 한 달도 안 된 조례를 다시 손대는 것은 법의 완결성과 일관성에 어긋나니, 시의 용역과 실태조사를 거쳐 합리적 대안을 도출하자고 회의에서 수차례 제안했다”면서도 “하지만 일부 의원들이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들어와 ‘무조건 전면 폐지’를 밀어붙였다”고 털어놨다. 결국 상임위는 찬반 의원들의 이름을 남기지 않는 ‘무기명 투표’로 조례안을 원안 가결시켰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진 가운데, 원내 1당인 민주당은 당론조차 정하지 않고 ‘자율투표’라는 미명 아래 무기력하게 길을 터준 결과다. 본회의를 목전에 둔 현재까지도 민주당은 민원부담과 시장의 사전 요청 부재를 이유로 당론 채택 논의를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양시 환경과 안전을 생각하는 시민사회단체 연대’는 22일 긴급 성명을 내고 “경제적 이익과 표면적 규제 완화 뒤에 가려진 시민 전체의 환경·안전 가치를 직시하라”며 “시의회는 10년, 20년 후 고양시의 얼굴과 아이들의 안전을 파괴하는 표고 기준 삭제안을 본회의에서 즉각 부결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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