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곽노현·정철승·박황희 공저
『불온한 시대의 동행』 북토크 성황
경계인으로 살아온 삶과 의미 성찰

함세웅(맨 오른쪽) 신부가 지난 19일 열린 『불온한 시대의 동행』 북토크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함세웅(맨 오른쪽) 신부가 지난 19일 열린 『불온한 시대의 동행』 북토크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고양신문]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그리고 이 시대에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범구 전 주독일대사,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정철승 변호사, 박황희 고려대 한문학과 겸임교수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해 온 네 명의 ‘경계인’이 지난 19일 서울 홍대 앞 청년문화공간 JU에서 열린 『불온한 시대의 동행』(파라북스) 북토크를 통해 시민들과 만났다. 이날 행사에는 2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해 민주주의와 시민정신,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정치·언론·교육·법조·인문학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살아온 저자들은 자신들의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가 직면한 현실을 진단하고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성찰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과 맞닿아 있었으며, 권력과 제도, 시민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을 담아냈다.
대담에 앞서 함세웅 신부(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와 우희종 한국마사회장(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 김민웅 목사(촛불행동 상임대표)가 축사에 나서 책과 저자들이 갖는 시대적 의미를 짚었다. 

동행은 민주주의의 근본정신
이날 북토크를 관통한 핵심 키워드는 ‘동행’이라는 시민정신이었다.
함세웅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해 온 ‘동행(Synodality)’ 정신을 언급하며 “동행은 교회의 존재 이유이자 민주주의의 근본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시민과 동행할 때 살아 움직이고, 정치는 국민과 함께할 때 정당성을 얻는다”며 “이 책은 우리 시대를 향한 실존적 성찰이자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요청”이라고 평가했다. 

우희종 회장은 저자들을 ‘경계인’으로 규정하며 “정치와 학문, 제도와 현실,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변화는 늘 경계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편안한 자리를 선택하기보다 전공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갈등과 논쟁의 현장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김민웅 목사는 책 제목에 담긴 ‘불온’의 의미를 재조명했다. 그는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권력에게 불온한 존재였다”며 “불의한 시대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사회를 진전시켜 온 주역들”이라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정범구를 평화와 민주주의를 고민해 온 정치인으로, 곽노현을 법과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꾸려 했던 실천적 지식인으로, 정철승을 역사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법조인으로, 박황희를 근원적 성찰을 통해 시대를 비판하는 인문학자로 각각 소개했다. 이어 “이 책은 민주주의와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싸워 온 네 사람의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불온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이어 공동 저자인 박황희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대담에서 저자들은 각자의 삶과 실천을 통해 얻은 경험과 고민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박황희(맨 오른쪽)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북토크 대담에서 정범구(오른쪽에서 두 번째) 전 주독일대사가 발언하고 있다. 
박황희(맨 오른쪽)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북토크 대담에서 정범구(오른쪽에서 두 번째) 전 주독일대사가 발언하고 있다. 

정범구 전 대사는 독일 유학과 통일 독일을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민주주의와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1997년 대한민국 첫 대통령 후보 TV토론 사회자로 나섰던 경험을 회고하며 “민주주의는 공정한 절차를 통해 유지된다”고 말했다.
정 전 대사는 최근 맡게 된 ‘장발장은행’ 은행장 역할을 소개하며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빈곤 문제를 이야기했다. 장발장은행은 벌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아 노역장 유치 위기에 처한 시민들에게 무이자로 벌금을 대출해주는 시민단체다.
정 전 대사는 “몇백만원의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며 “장발장은행은 단순한 금융기관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의 장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경제적 취약계층이 범죄조직에 이용돼 벌금형을 받는 사례들을 언급하며 “가난이 또 다른 처벌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자신을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무소속 경계인”이라고 소개했다. 법학자였지만 법학계의 주류에 속하지 않았고, 교육감이었지만 교육 관료 출신도 아니었으며, 오랜 기간 사회운동을 했지만 특정 운동권의 계보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시대와 싸운 사람들
곽 전 교육감은 삼성 경영권 승계 문제를 고발했던 경험과 국가정보원 불법사찰 문제를 제기했던 과정을 설명하며 “민주주의는 시민의 끊임없는 감시와 참여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 시절 자신이 겪은 이른바 ‘후보매수 사건’을 회고하며 검찰권 행사와 사법 시스템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사후 후보매수라는 전례 없는 법리가 적용돼 처벌받은 유일한 사례”라고 주장하며 “당시 수사와 재판 과정을 정리한 회고록을 곧 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열린 『불온한 시대의 동행』 북토크 주요 참석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철승, 박재동, 곽노현, 정범구, 박황희, 김민웅, 함세웅, 박석무, 우희종.
지난 19일 열린 『불온한 시대의 동행』 북토크 주요 참석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철승, 박재동, 곽노현, 정범구, 박황희, 김민웅, 함세웅, 박석무, 우희종.

정철승 변호사는 독립운동가 윤기섭 선생의 외손자로 살아온 경험을 소개하며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것은 자랑인 동시에 부담이었다. 선조들이 남긴 정신적 유산이 자신을 사회적 약자와 역사적 정의를 위한 길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자신이 맡고 있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관련 사건을 언급하며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자료를 분석한 과정에서 발견한 문제점을 설명했다. 이어 자신이 해당 사건을 다루면서 사회적 비난과 법적 부담을 감수하게 됐다면서도 “사법 민주화와 진실 규명을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혀 참석자들로부터 큰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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